디노 부차티(Dino Buzzati)(1940)

쇼츠의 시대. 짧고 빠름을 추앙하는 시대. 기다림 없는 시대. 빠른 성취와 인정을 욕망하는 시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무위(無爲)의 쓸모를 경멸하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살아내는 삶 너머에서 무엇이 도래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삶의 국경 너머에서 사건이 발생하길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특별한 것은 오지 않는다. 삶은 기다림, 그 자체이다. 2025년 1월.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앞 서점. 시집 코너에서 나는, 미지의 책을 기다렸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이탈리아 친구, 로렌조(Lorenzo). 나에게 추천한 책. 그는 나에게 구글로 번역된 한국어로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1940)을 추천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번역된 이탈리아어로 러시아 시인 안나 아흐마또바, 알렉상드르 블로끄 시집을 추천해주었다. 언어와 언어 사이. 우정은 번역되는 언어를 기다린다. 우정은 삶의 국경 너머 사막의 선인장으로 천천히 솟아오른다. 삶은. 기다림은.